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트 판니스텔로이 (문단 편집) ===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국가대표]] 경력 === 클럽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상당하다. 판니스텔로이와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반니가 더 우위라는 게 중론. [[로이 마카이]]나 너무 빨리 망한 [[파트릭 클라위버르트]]에 비하여도 꿀리지 않는다. 클라위버르트의 전성기 시절 당시 반니, 마카이를 포함해 EPL 득점왕 출신인 [[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]] 등 뛰어난 스트라이커들은 클라위버르트 한 명에게 전부 묻혔다. 그 중 클라이막스는 [[UEFA 유로 2000]]의 득점왕이었다. 근데 판니스텔로이의 전성기는 클라위버르트의 전성기와는 서로 달랐기 때문에 묻혔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애매한 게 클라위버르트는 UEFA 유로 2000 이후 하향세를 겪게 되는 반면에 판니스텔로이의 전성기는 맨유에 이적한 2001-02 시즌부터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[[UEFA 유로 2004]] 본선에서는 클라위버르트를 제치고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]]의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확보하면서 '''총 4골을 넣고 대회 득점 공동 2위에 오르는 활약을 선보인다.''' 재밌는 점은 클라위버르트와 판니스텔로이는 1976년 7월 1일로 둘 다 생년월일이 같다는 거다. 그런데 판니스텔로이에 비하여 젊을 때부터 천재로 불렸던 클라위버르트는 너무 빨리 몰락하고, 반대로 클라위버르트가 국대에 뽑힌 '''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년 프랑스 월드컵]]'''에는 한참 멀었던 판니스텔로이가 클라위버르트보다 더 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다. 다만 아쉽게도 판니스텔로이는 그 명성과 나름 긴 커리어에 비해 유독 [[FIFA 월드컵]]과는 인연이 거의 없던 비운의 선수들 중 하나다.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프랑스 월드컵]] 당시에는 아직 여러 유망주 중 하나일 뿐이어서 뽑히지 않아서 월드컵 직후에나 국가대표 데뷔를 했고, 클럽에서 그의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[[2002 FIFA 월드컵 한국·일본|2002 한일 월드컵]] 시기에는 네덜란드가 [[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|포르투갈]]과 [[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아일랜드]]를 넘지 못하고 '''최종 예선에서 탈락하여 아예 팀 자체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.''' 이때는 판니스텔로이도 [[키프로스 축구 국가대표팀|키프로스]], [[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|에스토니아]]와 [[안도라 축구 국가대표팀|안도라]] 등 약체 팀 상대로만 양학을 하고 가장 중요한 상대였던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상대로는 팀과 같이 삽질을 하고 침묵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. 이후 [[2006 FIFA 월드컵 독일|2006 독일 월드컵]]에서는 드디어 대망의 월드컵 데뷔를 하게 되어 전 경기에 선발로 나와 [[죽음의 조/축구|죽음의 조]]였던 조별 리그에서 [[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|코트디부아르]] 상대로 골을 넣는 등의 활약을 했으나, 이어진 16강에서 다시 만나게 된 포르투갈 상대로 팀이 패배하여 조기에 탈락하여 총 4경기 1골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하게 됐다. 4년 후 [[2010 FIFA 월드컵 남아공|2010 남아공 월드컵]] 당시에는 함부르크에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라 최종적으로 대표팀에 뽑히지 않아 결국엔 독일 월드컵이 그의 선수 커리어 중 직접 뛴 유일한 월드컵 대회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